2020년 5월, 하버드대 로스쿨 기업거버넌스포럼(Harvard Law School Forum on Corporate Governance) 홈페이지에 한 리포트가 올라옵니다. 제목은 ‘ESG에서 'S'를 다시 생각할 시간’(Time to Rethink the 'S' in ESG)입니다.
2020년 하버드대 로스쿨 기업거버넌스포럼엔 'ESG에서 'S'를 다시 생각할 시간'이란 글이 올라옵니다. (출처=fticommunications.com)
리포트는 코로나19 이후 S(사회)가 E(환경)과 G(거버넌스)만큼이나 중요해졌고, S를 관리하지 않으면 기업 리스크를 키우고 평판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반대로 S를 관리하는 건 그 자체로 기업 평판을 키우는 좋은 PR 활동이 될 수 있다고도 말하죠.
실제로 오늘날 기업 평가기관이나 투자자들 사이 ESG에서 사회 분야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듯합니다. 그런 만큼 기업도 관련 상황에 ‘반응’하는(Reactive) 위치에서 ‘사전 대응’하는(Proactive) 위치로 전환해야 한다는 게 리포트의 요지입니다.
이 리포트는 ESG에서 다소 간과된 사회 분야를 부각하고 그 중요성을 새삼 환기합니다. 다만 환경이나 거버넌스와 다르게 사회는 ESG와 투자에서 그 의미가 다소 모호한 편이기도 하죠.
<넘버스>는 ESG의 S에 속하는 사회 분야, 그 가운데서도 기관투자자와 주주 행동주의(Active Ownership) 관점에서 최근 중시되는 ‘인적 자본 관리’(Human Capital Management)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이번 콘텐츠는 아래와 같이 진행됩니다.
1. 기업 경영에서 인적 자본 관리가 중요해진 이유
2. 기업의 인적 자본 관리에 ‘진정성’을 강조하는 기관투자자들
3. 주주 행동주의와 직결되는 인적 자본 관리
4. 기업 인적 자본 관리의 성과와 중요성 (Feat. 슈로더)
우리 회사 퇴사율이 높다면? '인적 자본 관리'를 의심하라
기업 경영에서 말하는 ‘인적 자본 관리’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기업 경영에서 인적 자본 관리는 사업 활동 범위 내 고용된 인력에 대한 기업의 행동방식을 말합니다.(출처=게티이미지뱅크)
ESG에서의 사회 분야는 큰 틀에서 직원과 소비자, 기업이 속한 지역사회, 나아가 개인정보를 포괄하고요. 광의로는 인권 전반으로도 다뤄집니다. 어느 하나라도 놓쳐선 안 될 이슈지만, 그 가운데서도 인적 자본 관리가 투자자들에게 강조되는 건, 그것을 어떻게 관리할지에 따라 기업 실적과 투자 성과도 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적 자본 관리란 말은 다소 막연하게 들리는데요. 쉽게 생각하면 직원을 뽑아 급여를 주고 교육·투자하며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등의 행위를 뜻합니다. 나아가 직원의 건강과 안전, 복지를 챙기고 바람직한 기업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일도 포함되죠.
쉽게 우리 주변의 사례를 살펴봐도 좋겠습니다. 예컨대 내가 일하거나 경영하는 회사에 퇴사율이 높다면 그 이유를 고민해볼 수 있을 겁니다.
만약 특정 기업의 직원 이탈이 잦다면 회사가 인적 자본을 잘못 관리하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할 필요가 있겠습니다.(출처=게티이미지뱅크)
직원에게 급여를 충분히 못 주는 게 대표적일 거고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지켜주지 못하는 업무 환경이거나 노동 환경이 안전하지 못한 경우, 직업적으로 성장하기 어려운 조건 등도 떠오릅니다. 이들 모두 큰 틀에서 인적 자본 관리가 잘 되고 있지 못한 상황이라 볼 수 있습니다.
단적으로, 인적 자본 관리를 잘 하면 직원 이탈률을 낮출 수 있습니다. 그를 통해 뛰어난 역량을 갖춘 조직 구성원을 잘 유지할 수 있고, 그렇게 갖춘 인적 자산은 경쟁 상황에서도 우위 요인이 될 겁니다.
과거엔 회계나 비용-효율 관점에서만 따지던 인적 자본 관리가 오늘날엔 기업 가치적 관점으로 해석되고 있는 겁니다. 왜, 또 어떻게 그렇게 되고 있는지에 대해 아래 단락에서 이야기를 더 전개해보겠습니다.
기관투자자들이 인적 자본 관리에서 ‘진정성’을 찾는 이유
기업과 구성원 간 상호작용은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판단하는 ESG 경영과 연결됩니다. 기관투자자들도 이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죠.
사회적 원칙을 지키면서 환경을 훼손하지 않고 경영하는 기업에 대한 평판이 중요하다는 점도 있겠지만, ESG 경영을 하는 기업에 투자하는 게 중장기 투자 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핵심이라는 게 오늘날 투자업계의 인식이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ESG에 기초한 지속가능 투자는 투자자들의 ‘현실적 판단’으로 봐도 무방합니다.
세계에서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를 가장 먼저 도입한 글로벌 자산운용사 슈로더(Schroders)는 ‘글로벌 투자자 스터디 2022’를 통해 오늘날 투자자들이 생각하는 인적 자본 관리의 중요성을 담았습니다.
(출처=schroders.com ‘글로벌 투자자 스터디 2020’ 갈무리)
투자자 입장에서 펀드 운용사가 기업들과 소통하기 원하는 3대 이슈 가운데 인적 자본 관리가 자연 자본 및 생물 다양성이나 기후, 포용성, 인권, 거버넌스 등 다른 요인들보다 더 위에 있는 게 확인됩니다.
이에 대해 슈로더는 “지속가능 투자에서 핵심적 부분은 주주 행동주의”라며 “기업은 주주들에 대한 책임이 있으므로 기업 주식을 직접 보유하는 투자자, 수많은 펀드 가입자들의 이해관계를 책임지는 펀드 운용사들은 기업이 특정 방식으로 행동하고 기업 행위에 대한 기대치를 설정하도록 기업에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글로벌 투자자문사 ‘머로우 소달리’(Morrow Sodali)가 한 설문조사도 눈에 들어옵니다. 2021년 전 세계에서 총 29조 달러, 우리 돈으로 총 3경8000조원 규모 투자금을 운용하는 42개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벌인 ESG 인식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었습니다.
리포트에 따르면 기관투자자들은 ‘2020년 특히 경영 관여활동을 하게 한 요인’으로 기후 변화(85%)와 평판 리스크(64%)에 이어 인적 자본 관리(64%)를 꼽았습니다. 리포트는 “인적 자본 관리는 수년간 지배적 이슈로 자리매김”했다며 “물리적, 경제적, 사회적 영향을 포함해 코로나19가 직원 복지에 끼친 영향으로 인해 특별한 중요성을 띠게 됐다”라고 말합니다.
머로우 소달리는 2020년에도 동일한 주제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리포트에서 “기업 목적과 문화를 명시적으로 표현하거나 양적인 인적 자본 지표를 공개하는 것만으로는 (기관투자자들의) 기대를 채울 수 없다”라고 강조합니다.
“투자자들은 회사가 서면으로 어떤 말을 하느냐보다는 최고 경영진이 목적과 문화를 어떻게 전달하며 '리더의 목소리'를 통해 조직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지가 중요하다는 명확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인적 자본 관리에는 ‘진정성’이 필요하다는 게 머로우 소달리의 설명입니다.
인적 자본 관리, 이젠 ‘주주 행동주의’와도 직결됩니다
앞서 슈로더의 조사에서도 언급했지만, 기업 경영에서 인적 자본 관리가 더 중요해지는 건 오늘날 투자시장에 영향력이 커지는 주주 행동주의 때문이기도 합니다.
기업 경영에 인적 자본 관리가 더 중요해지는 건 주주 행동주의의 영향도 있습니다.(출처=게티이미지뱅크)
기업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주 행동주의는 헤지펀드의 대표적 ‘이벤트 드리븐’(Event Driven) 전략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개인 투자자나 주주 연대도 적극적으로 이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주주 행동주의는 주주로서 투자의 장기적 가치를 강화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기업이 근시안적으로 단기 이익만 추구하는 건 가치를 키우는 관점에서 맞지 않고, 이에 기관투자자들은 기업과 소통하며 기업의 방향성을 좀 더 거시적으로 바꾸고자 하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ESG는 자연스럽게 주주 행동주의와 직결되며, 인적 자본 관리도 당연히 그 안에 포함됩니다.
미국의 ESG 기반 비영리단체 ‘애즈유소우’(As You Sow)의 사례를 살펴보죠. 이곳은 기업 ESG와 관련한 11개 프로그램을 놓고 기업에 주주제안을 합니다.
관련해 2020년 주주제안에서의 성과들이 확인됩니다. 구체적으로 어드밴스드 오토 파츠(Advanced Auto Parts)와 오토존(AutoZone), 울타 뷰티(Ulta Beauty)에 노동자들의 저임금에 따른 리스크 증가와 관련해 기업과 합의를 끌어냈고요.
또 패스널(Fastenal), 제뉴인 파츠(Genuine Parts), 오릴리 오토모티브(O’reilly Automotive)와는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을 통해 주주 과반의 지지를 얻어냅니다. 이에 따라 기업은 인적 자본 관리 문제를 어떻게 개선할지 회사 정책과 목표를 설명하는 보고서를 내게 됐죠.
주주 행동주의가 기업의 인적 자본 관리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모습입니다. 다음 단락에선 기관투자자의 설명을 직접 들어봅니다.
기관투자자가 보는 인적 자본 관리의 중요성 (Feat. 슈로더)
글로벌 자산운용사 슈로더는 기업에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고 소통하는 대표적 자산운용사입니다. 지난 해에만 73개국, 3400여 기업에 경영 관여 활동을 하고 주주총회에 7000여 회 참석해 의결권을 행사했습니다.
슈로더는 한국을 비롯해 세계 곳곳의 회사 경영에 관여하고 의결권을 행사해왔습니다.(출처=schroders.com)
슈로더는 2022년 미국 리테일·서비스 부문 기업들에 공식적으로 직원들에 연간 유급 병가를 충분히 제공하고, 전 직원이 이를 이용할 수 있는 정책을 수립하라 요청합니다. 미국 리테일 기업이 그런 병가를 제공할 의무가 없음에도 슈로더가 인적 자본 관리에 관여한 겁니다.
일례로 미국 헬스케어 기업이자 약국 소매업체인 CVS 헬스(CVS Health)의 2022년 5월 주주총회 때 전체 직원을 대상으로 유급 병가 정책을 채택하고 공개하도록 요구하는 주주 제안이 담겼고, 슈로더는 이 제안을 지지하는 주주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슈로더는 구체적으로 직원에게 복지 혜택을 제공하는 게 기업 고용 상황을 개선하는 성과로 이어진 케이스를 소개합니다.
슈로더의 사회적 주제 담당자인 케이티 리드(사진)는 “미국 한 리테일 기업이 유급 병가 혜택을 도입한 뒤 직원 이탈율이 세 배 낮아졌다”라고 설명합니다.(출처=schroders.com ‘Video: Are people a company’s greatest asset? Part 1’ 갈무리)
케이티 프레임(Katie Frame) 슈로더 사회적주제 담당자는 “미국 내 한 리테일 기업이 유급 병가 등 경쟁력 있는 혜택을 제공한 게 직원의 성과 개선으로 이어지는 것을 확인했다”라며 “혜택을 도입한 뒤 모니터링한 결과 직원 이탈률이 세 배는 낮아졌다”라고 말했습니다.
학술기관의 실증적 조사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영국 카디프대학교가 발표한 ‘2021 Living Wage Survey’에 따르면, 직원들에게 생활 임금을 보장한 고용주들은 생활 임금이 조직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언급합니다.
직원에 생활 임금을 보장한 고용주 가운데 60%를 넘는 응답자가 직원과 관리자 간 관계 개선, 직원 채용 등에 긍정적 효과를 얻었다고 답했습니다. (출처=livingwage.org.uk ‘2021 Living Wage Survey’ 갈무리)
구체적으로 고용주의 66%는 생활 임금 지급이 직원과의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고요. 고용주의 62%는 그를 통해 직원 채용에도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다고 밝혔습니다. 또 계약 수주나 고객 유치 등 상업적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는 응답도 다수를 차지했죠.
이에 대해 루시 러너(Lucy Larner) 슈로더 사회적 관여 담당자는 “지난 5년을 살펴보면 상대적으로 낮은 급여를 지불하는 경쟁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급여를 주는 기업들에게서 3% 이상 연간 성과가 더 높게 나타난다”라고 설명합니다.
또 직업 환경 의학 저널(Journal of Occupational Environmental Medicine)에 게재된 한 연구 보고에 따르면, 고용주 입장에서 유급 병가 제도를 채택해 절감할 수 있는 결근 관련 비용은 2007년부터 2014년까지 8년간 6억3000만~18억8000만 달러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이 연구는 ‘인플루엔자 유사 질환의 확산과 관련된 결근을 줄이는 유급 병가의 잠재적 경제적 이점’(Potential Economic Benefits of Paid Sick Leave in Reducing Absenteeism Related to the Spread of Influenza-Like Illness)이란 이름으로 저널에 게재됐습니다.)
루시 러너 슈로더 담당자는 이에 대해 “일부 기업의 경우 유급 병가가 직원들과 비즈니스 성과에 가져오는 이점을 확인한 후 이를 중점적으로 시행하고 있다”라며 “코로나19 정책만큼은 아니더라도 근로자들에게 유급 휴가 사용을 허용하는 정책을 확립하는 기업이 늘었다”고 설명합니다.
결론 : 기업의 인적 자본 관리, 이젠 ‘선택’이 아닌 ‘필수’
기업의 경영 성과를 넘어 투자에서의 이익과 주주 행동주의 등 종합적인 관점에서 인적 자본 관리는 매우 중요해 보입니다. 세 줄 결론입니다.
1. ESG에서 사회 분야, 특히 인적 자본 관리는 투자자들이 눈여겨보는 요소가 됐습니다.
2. 오늘날 기관투자자들은 인적 자본 관리를 투자 요소로 꼽고 있고, 주주 행동주의 진형도 잘못된 인적 자본 관리에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3. 기업이 직원들에게 생활 임금을 주고 유급 병가를 제공하는 등 제도를 확충함에 따른 긍정적 효과는 실증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엔데믹’ 전후 인플레이션이 고착화하면서 노동자들의 실질 소득이 줄어드는 모습입니다. 같은 돈으로도 과거보다 살 수 있는 것들이 적어지게 됐고, 그에 따른 어려움은 당연히 고소득자보다 저소득자들이 더 크게 겪을 겁니다.
투자업계에선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기업이 인적 자본 관리의 필요성을 더 인식하고 신경 써야 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근로자들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 뿐 아니라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투자자의 재무 목표 달성 등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겁니다.
슈로더의 앵거스 바우어 지속가능투자 리서치 대표는 “그간 직원은 ‘비용’에 포함됐기에 인적 자본 관리도 전통적 회계 패러다임에 있었다”라며 “하지만 회사가 사람에 투자하는 것은 장기 역량에 투자하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